
책제목 : 나목
지은이 : 박완서
펴낸곳 : 세계사
전쟁은 끝났지만,
폐허 속에 남겨진 삶의 이야기.
<나목>은 6.25 전쟁 직후를 배경으로, 주인공 이경의 삶을 통해
황폐해진 시대의 공기를 현실적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전쟁으로 두 오빠를 잃은 이경은 미군 PX에서 일하며 엄마와 단둘이 살아간다.
꿈도, 희망도, 미래도 없이 그저 하루를 버텨내는 삶.
그런 그녀의 앞에 가난한 화가 희도가 나타난다.
희도는 생계를 위해 미군들이 맡긴 사진을 그리며 살아가고,
이경은 어딘가 자신과 닮아 있는 듯한 그에게 점차 끌리기 시작한다.

희도는 "내가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라고 말하며 그림을 그린다.
방에 틀어박혀 그가 그려낸 것은 벌거벗은 채 죽어가는 듯한 고목이었다.
이경은 그 그림 속에서 희도 역시 자신처럼 전쟁의 상처와 절망 속에 갇혀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믿게 된다.
그리고 그 동질감은 어느새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나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느꼈던 감정이 단순한 사랑만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이경이 희도에게 끌렸던 이유는, 서로가 비슷한 고통을 안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희도 역시 현실과 타협하며 잠시 예술을 내려놓았지만,
이경을 만나며 다시 그림을 그라고 싶다는 열망을 되찾는다.
어쩌면 희도에게 있어 이경은,
잊고 있던 자신의 세계로 다시 걸어 들어가게 만드는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정이 있는 희도와 이경은 결국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였다.
시간이 흐른 뒤, 이경은 남편 태수와 아이들을 둔 중년의 여성이 되어 살아간다.
그리고 희도의 유작전에서 다시 그의 그림과 마주하게 된다.
그 순간 이경은 자신이 희도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죽어가는 고목이라고 생각했던 그림은 사실,
봄을 기다리며 겨울을 견디고 있는 '나목'이었던 것이다.

이 작품은 전쟁 이후 망가져버린 사람들의 삶을 아주 처절하게 보여준다.
전쟁은 이미 끝났지만, 남겨진 사람들의 삶 속에서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채 이어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이경은 그런 모습들을 때때로 위선처럼 바라본다.

처음에는 그런 그녀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 때문에 두 오빠가 죽었다고 믿으며 살아가는 죄책감을,
그녀가 '전쟁'이라는 거대한 현실 뒤로 숨기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자
오히려 이경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녀 역시 죄책감과 현실 속에서 어떻게든 버티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이경은 희도가 아닌 태수를 선택한다.
그 선택은 단순한 사랑의 실패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살아남아야 하는 현실 속에서,
안정된 삶이라는 생존의 방향을 택한 것이었다.
희도가 과거와 상처를 상징하는 인물이었다면,
태수는 앞으로 살아가야 할 미래에 가까운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경의 선택이 행복으로 완성되었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세월이 흐른 뒤에도 그녀는 끝내 자신이 선택한 삶을 완전히 끌어안지 못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가 그려낸 이경의 삶은 더욱 쓸쓸하게 마음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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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 양귀자 (0) | 2026.05.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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